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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Story/economy

[예병일의 경제노트]자그마한 고향 마을이 제일 멋진.....

2004년 12월 7일 화요일

자그마한 고향 마을이 제일 멋진 곳이라는 걸 아는 국제형 인간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4.12.7)

하루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즉, 동료 과학자들은 사실은 국내형 인간과 국제형 인간이라는 두개의 인간을 한 몸뚱아리 안에 갖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국내형 인간’은 청구대금을 지불하고, 긴 통근 시간에 시달리고, 정부(어느 나라든)에 대해 불평을 하며, 쓰레기를 밖으로 내놓는 등의 일을 하는 반면, ‘국제형 인간’은 이웃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지적(知的)인 일을 하고, 8시간의 시차가 나는 곳에 있는 사람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정기적으로 장거리를 날아가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물론 과학자들에게만 독특한 것은 아니다. 현대 교육의 중심 목표 중 하나는 젊은이들을 국제인으로 활약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있다.

작은 나라 국민이건 큰 나라 국민이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국제 세계로 나가는 관문을 드나들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건전하고 균형잡힌 생활을 위해서 우리 모두는 정말 중요한 것들-따뜻한 가정과 가족, 그리고 좋은 흙냄새 따위-로 이따금씩 되돌아가야만 한다.

로버트 러플린(카이스트 총장)의 '인터내셔널 맨' 중에서 (조선일보, 2004.12.7)



로버트 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 총장.
스탠퍼드대 응용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199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던 그는 지난 8월 카이스트 총장에 취임했습니다.

러플린 총장은 현대인이 '국내형 인간'(domestic man)과 '국제형 인간'(international man)이라는 두가지 자아(self)를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미국에서 대학교수 생활을 하면서 이런 두가지 자아의 부조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학생들을 많이 보았나 봅니다. 전문분야에서는 매우 뛰어나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대책없는 혼돈상태에 빠져있는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을 많이 봐왔다는 것이지요.
조기유학이나 조기 영어교육의 부작용으로 자신의 정체성, 즉 '국내형 인간'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일부 젊은이들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어설픈 세계화의 부작용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국내 시장이 작기 때문에 해외시장을 개척하지 않고서는 풍족하게 살아가기 힘듭니다. 따라서 직장인이든, 공무원이든 누구나 외국 시장, 외국의 동향을 주시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러플린 총장이 얘기한 과학자들처럼, 평소에는 국내형 인간으로 살아가다가도, 필요할 때는 바로 국제형 인간으로 바뀔 수 있도록 항상 스스로를 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내형 인간의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혼돈이 오면,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자그마한 고향 마을이 제일 멋진 곳이라는 걸 아는 국제형 인간. '진정한 글로벌화', '진정한 세계화'는 바로 이런 것이겠지요.

어디 글로벌화 뿐이겠습니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양면적인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럴 수 밖에 없더라도, 우리 내부에 자그마하지만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면, 행복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