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13일 월요일 래디칼하게, 하지만 익스트림하지 않게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4.12.13) 이제 우리는 좀더 차분하게 근원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다시말해 라디칼(radikal)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물의 뿌리인 본성(Natur der Sache)은 덮어둔 채 두루뭉술하게, 은근슬쩍, 대충대충, 이해타산과 정리 정략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근원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반시대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의할 게 있습니다. 라디칼하되 결코 엑스트렘(extrem)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극단적인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역사를 망치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잘라 말하면, 한국 사람들은 라디칼하지 못하고 엑스트렘합니다. 우리 현대사가 그랬습니다. 그저 극우 아니면 극좌가 판을 쳤습니다. 남과 북을 말아먹은 건 라디칼하지 못한 극단주의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중간'을 일컬어 기회주의라 폄하하였습니다. 엑스트렘은 당연한 귀결이지만 톨레란츠(Toleranz, 관용)를 알지 못합니다. 항상 저만 옳다고 합니다. "래디칼(radical)하게, 하지만 익스트림(extreme)하지 않게." 래디칼과 익스트림은 의미가 비슷한듯 다릅니다. 래디칼은 '뿌리'에서 파생되어 '근본적인', '철저한'의 뜻을 갖습니다. 물론 '과격한', '극단적인'이라는 뜻도 있긴 합니다. 익스트림은 '맨 끝의', '극단적인', '과격한'의 의미입니다. '래디칼(radical)하게, 하지만 익스트림(extreme)하지 않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여기서 래디칼은 '극단적인'이 아닌, '근본적이고 철저한 자세'를 의미합니다. 어떤 일을 하던 그 뿌리를, 근본을 놓치지 않고 철저히 보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임하는 걸 말합니다. 내가 자동차 회사 직원이라면 자동차에 대해서 그 뿌리까지 철저히 연구하고 만드는, 내가 경영자라면 직원들의 생활을 맡고 있는 자신의 책임을 철저히 고민하는 그런 자세로 살아갔으면 합니다. 내가 해야할 일은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비합리적인, 극단적인 주장을 목소리 높여 외치기만 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독일 베를린에 사는 50세의 어수갑씨. 1981년 독일 유학길에 올랐던 그는 1989년 '임수경 방북사건'의 배후 인물로 지목돼 공개 수배되면서 10여 년간 모친이 계신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베를린을 떠돌며 살았습니다. 1990년 방북, 김일성 주석까지 만났던 그는, 그후 유럽 운동권의 갈등과 반목 속에서 상처를 입고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카톨릭 베를린 대교구의 비상근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를 굳이 좌냐 우냐로 구분한다면, 좌쪽일 겁니다. 하지만 그는 극단에 치우친 우파를 비판하는 것 만큼 강하게, '진보주의자'들의 '선명성 대결'을 '목불인견'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합니다. 그들이 관용할 줄 모른다고,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설 자리가 없다고, 극단으로 치우친 익스트림 좌파를 비판합니다. '성공'한 다른 운동권 인사들과는 달리, 그는 '화려'하지 않은 모습으로 여전히 독일 땅에서 떠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정치적인 생각이 좌파냐 우파냐를 떠나 그의 말이 더 진솔하게 들립니다. 그의 말대로, 사물을 균형 잡힌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것, 너무 한편에만 치우치지 않고 폭넓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경제 분야건, 정치 분야건, 우리 사회에 래디컬하지만 익스트림하지 않은 사람들이 주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근본을 생각하며 뿌리까지 철저하게 수행하되,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항상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관용'할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래디칼(radical)하게, 하지만 익스트림(extreme)하지 않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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