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20일 수요일

차이나 드림과 신조선족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5.4.20)

중국은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55개의 소수민족이 어울려 살아가는 말 그대로 대국(大國)이다. 그런데 최근 여기에 56번째 민족이 추가됐다고 한다. 바로 신조선족, 때로는 한국족으로 불리는 30만 재중 한국인이 그 주인공이다.

신조선족이란 표현은 더 이상 실패한 한국인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이제는 중국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 한국인을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탈바꿈했다. 이민을 불허하는 중국 정책상 이들의 국적은 엄연히 한국이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한국으로의 복귀를 꿈꾸지 않는다.

신조선족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들의 의견을 종합한 최소한의 조건은 △실패를 경험한 이들로 중국에 대해 ‘겸손’한 사람 △30대 후반 이상의 중국어 소통 가능자 △가족과 함께 살 것 △자녀가 중국을 선택해도 서운해하지 않을 것 등이다.

정호재의 '쫄딱 망하고 쉬쉬...'차이나 드림'은 없다' 중에서 (주간동아, 2005.4.19)



'신조선족'.
중국의 조선족에서 따온, 30만 재중 한국인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중국에서 사업에 실패해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들, 또는 중국이 주는 매력에 푹 빠져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버리고 중국에서 정착한 사람들입니다.

한국인들이 ‘기회의 땅’ 중국으로 몰려가기 시작한 지 10여 년. 약 30조원의 투자가 이루어졌고 3만여개의 업체가 진출했습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고, 한류열풍을 타고 미장원, 성형외과 등이 성업중이라는 기사도 자주 접했었습니다.

하지만 주간동아의 정호재 기자가 현지에서 취재해본 결과, 중국으로 몰려갔던 한국인들 중 많은 수가 사업에 실패해 떠돌고 있었다고 합니다. 정 기자를 만난 60대의 한국인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망했는지 알아. 말을 모르는데 어떻게 기회의 땅이겠어. 당신 눈에는 여기서 희망이 보여? 13억 인구를 만나 무얼 어떻게 하겠다고, … 다 허상이야. 중국에서 사업에 실패해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들을 ‘신조선족’이라잖아. 내가 바로 그런 처지에 있어.”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어. 중국으로 오지 말라는 거야. 중국은 거대한 늪 같은 곳이야. 한번 발을 잘못 내딛으면 나같이 돼….”

중국 주요 도시의 한인촌에는 교회에서 식사를 하고 쪽방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는 한국인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중국으로 건너간 한국인들의 많은 수가 실패하고 있지만, 반면에 조선족들은 점점 더 부유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초기 한국인들이 투자했던 찜질방 같은 업체들을 조선족들이 상당수 인수했다는 겁니다.

갈수록 가난해지는 신조선족(중국에서 장기 거주하는 한국인)과 부유해지는 조선족. 한국에서는 지금도 조선족을 한 수 아래로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많지만, 중국 현지에서는 이미 관계가 역전되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 중국에서는 조선족 사장 밑에서 일하는 신조선족(한국인) 직원이 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사업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중국어 실력도 갖추지 않고, 철저한 준비 없이 무턱대고 중국으로 몰려갔던 무모함이 빚은 실패입니다.
철저한 준비, 열풍에 휩쓸리지 않는 냉정함은 언제 어디서든 중요한 덕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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