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공동체내의 신뢰가 있어야
근착(近着) 7월26일자 뉴스위크지는 '세계의 가장 좋은 나라들(The World's Best
Countries)'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 기사를 다 읽고난 독후감이 어쩐지 씁쓸하고 개운치 않다. 세계의 주목할 국가들의 현황을 개괄적 종합적으로 평가한 후 좋은 나라 상위 '톱 10'을 발표하고 있는데 그 순위는 스웨덴, 미국, 노르웨이, 일본, 폴란드,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아일랜드, 싱가포르, 캐나다 순으로 되어있다.
우리나라가 그 반열(班列)에 한자리 들지 못한 것이 서운해서가 아니다.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캐나다와 같은 대국 말고는 모두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별 볼일 없을 것 같은 작은 나라들이 당당히 좋은 나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이유와 우리나라의 현실을 대비해 볼 때 느끼는 암담한 당혹감 때문이다.
그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북유럽 소국들은 자본주의와 사회보장 및 경쟁과 협력의 조화균형에 성공함으로써 1인당 소득, 보건, 민주주의, (경제적)경쟁력, 환경, 정직성 등 어느 기준으로 봐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 UNDP는 1인당 소득과 더불어 문맹률, 수명 등 여러 가지 변수들을 종합한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를 다년간 측정하고 있는데 2004년엔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세계 175개국 중 각기 1,2위를 점하고, 미국은 8위이다.
또한 세계의 부패감시 기구인 Transparency International에 의하면 부패를 전혀 용인하지 않는(zero tolerance)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정부를 가진 핀랜드, 아이슬랜드, 덴마크를 수위에 놓고 있으며 프랑스와 스페인은 공히 23위를 차지하고 있다.
좋은 나라의 요체로 북유럽 제국이 취한 3가지 현명한 정책선택으로, 첫째 연구 과학중심 교육, 둘째 평등한 사회보장제도, 셋째 민간 섹터(private sector)의 조성을 들고 있으며 글로벌시대의 장점을 살려 이념보다는 개방성에 더 치중하여 북유럽 제국의 아이디어를 온 세계가 유용하게 수용할 것을 권한다.
한편 최근 국제 사회과학자 그룹이 65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세계 가치 조사(World Value Survey)에 의하면 세계 사람들의 행복의 순위는 5위까지 나이지리아, 멕시코, 베네수엘라, 엘살바도르, 푸에르토리코의 순으로 되어있고 미국은 16위이다. 과연 불안정하고 빈곤한 나이지리아인들이 풍요하고 오만한 미국인들보다 더 행복할까? 물론 행복이란 유전적 특질, 건강, 개인적 성격, 경제적 수입 및 기대치(expectation)등과 연관된 지극히 주관적 가치개념이다.
앞서 언급한 조사의 두 번째 질문인 만족도(satisfaction)에 대한 응답은 반대로 개발 국(developed nations)쪽이 상위를 점하여 순위가 극적 반전을 보이고 있는데 수입이 높고 여가가 많을수록 더 만족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돈과 행복간의 관계는 묘한 것이어서 저금통장의 잔고와 행복은 반드시 병행하지 않는데 그것은 수확체감의 법칙(the law of diminishing returns)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개발국의 1인당 국민소득 평균치의 꾸준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만족도(content level)는 지난 40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이다. 행복이란 안달나게 잡히지 않는 목표와 같은 것으로 수입이 느는 만큼 소망도 커지기 때문이다.
런던경제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의 리처드 메리야드 교수는 수입보다는(사회 구성원간의) '만족스러운 관계(satisfying relationship)'가 인간의 행복에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최근 영국의 행복의 정치학(politics of happiness) 연구에 자문역을 맡은 데이비드 핼퍼른씨는 행복은 공동체내의 타인에 대한 신뢰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다.
때에 따라서는 역경은 오히려 자신의 존재가치를 고양시킬 수도 있으며, 자연 또는 인위적 재난은 사회적 행복을 증진시킬 수도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 간의 관계를 활용하고 동료의식을 야기시키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역경을 사는 나이지리아인들이 생을 구가하며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소이(所以)이다.
이 특집기사는 너무나 많이 우리의 아픈 곳을 찌르고 있지 않는가? 정직성, 투명성, 腐敗, 不容, 민주주의, 평등한 사회보장... 그 어느 잣대를 가지고 우리의 현실을 재 보아도 '우리나라 좋은 나라' 소리를 하려면 갈 길이 먼 것처럼 보인다.
공동체내의 타인에 대한 신뢰의 정도가 곧 행복의 척도라는 말은 우리 가슴에 대못을
치는 말이 아닌가. 물질적 부만으로는 한이 없는 인간의 所欲을 따라잡지 못하는 행복추구의 근원적 수확체감의 법칙을 망각하고 허황한 물욕의 幻影을 좇고 있지는 않나? 권력욕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새 나라의 어린이는 서로 서로 돕습니다
욕심쟁이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새 나라의 어린이는 거짓말을 안 합니다
서로 믿고 사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 속에나 있는 좋은 나라는 언제나 실현되어 우리도 세계의 '톱10'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대통령이 총 맞아 죽거나 퇴임 후 감옥에 가지 않는 나라,
대통령의 아들들이 돈 받아먹고 감옥에 가지 않는 나라,
사과 상자에 돈다발을 채워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시운전을 해보지 않고도 정치가
돌아가는 나라,
똑같은 무리들이 간판만 바꿔 달면 신당이 되고 뚜렷한 비전도 없이 변화와 개혁을 한다 며 국민들을 몰고 다니지 않아도 민주주의가 되는 나라,
나중에 빗 더미에 치어 거덜이 날지언정 조삼모사(朝三暮四)로 국민에게 떡부터 나누어주고 표하고 바꾸어 먹으면서 민주주의 한다고 우기지 않는 나라,
길거리에서 경품부(景品附) 신용카드 내주어 국민들 빗쟁이 만들어 놓고 GNP의 허수로 경제성장 뽐내다가 신용불량자들 구제한다고 세금 쏟아 붓지 않는 나라,
역사의 한 대목을 들추어 과거의 원(怨)풀이 한(恨)풀이로 국민들 편갈라놓고 민족정기 세운다고 떠들면서 목적은 딴 데 있지 않는 나라,
데모할 제목이 없어 촛불데모 1주년 기념 촛불데모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삭발한 머리에 붉은 띠 두르고 주먹질 않고도 의견을 관철하고 협상이 되는 나라,
교통 신호등 위에 '신호 준수'라고 덧붙이지 않아도 지킬 것은 지키고 푸른 신호에 마음 놓고 길 건너도 되는 나라,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들을 어찌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있으랴. 그 중에는 좋은 나라를 만들기는커녕 잘못하면 나라가 거덜 나고 망하지 않도록 하기위해 정신차려야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절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속에 '우리나라 좋은 나라'를 심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행복은 공동체 내의 신뢰관계와 병행한다는 위의 말속에 진리가 있는 것 같다.
좋은 나라 운동본부를 방방곡곡 차려놓고 매일 동요라도 고창(高唱)하며 '우리나라 좋은 나라' 를 외쳐야 할까보다.
송광섭 (한아엔지니어링㈜ 부회장)
연우포럼 제공
www.younwooforu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