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acy Stories/라디오 스타
Simphony No.5 in D miner Op. 47
레드트레인
2006. 9. 4.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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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itrii Shostakovich Simphony No.5 in D miner Op. 47
Kirill Kondrashin, cond.
Moscow Philharmonic Orchestra (1964)
30년대 소련은 3천만 명이 숙청 당한 공포 정치의 시대였다. 당의 지침에 순응하지 않는 예술가에게는 어김없이 ‘형식주의’ ‘타락한 자본주의’ 등의 딱지와 함께 생명의 위협이 가해졌다. 촉망받는 젊은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1936년 1월,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드 부인'은 “음악이 아니라 횡설수설하는 음표 더미들”이라는 '프라우다'의 비판을 받았다.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인민의 적’으로 낙인찍혔다. 쇼스타코비치는 그해에 완성한 교향곡 4번 C단조의 초연을 포기해야만 했다. 짙은 고독과염세적인 분위기에 싸인 이 곡은 ‘타락한 부르주아 음악’으로 평가될게 예상됐고, 그것은 곧 작곡가의 신변을 위협할 게 분명했다. 1937년 11월에 발표한 교향곡 5번은 스탈린의 압제에 대한 쇼스타코비치의 대답이었다.'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은 '5번 교향곡'을 1937년에 먼저 발표한다. 암울한 앞부분과 당당하고 강력한 타악기의 후반부를 이루는 '혁명'에 대해 쇼스타코비치 본인은 첫 공연에서 '당국의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예술가의 답변'이라고 언급했다.
1악장과 3악장의 비극적인 분위기를 일소하는 4악장의 당당한 화음과 강력한 타악기의 향연은 아무리 혹독한 억압에도 꺼지지 않는 민중의 승리를 표현했다고 해도 좋고, 운명을 대하는 개인의 낭만적인 의지를 그렸다고해도 좋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스탈린 체제의 전진과 승리를 찬양하는 것은 작곡가의 의도와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관변 비평가 들은 ‘낙관적 비극의 전형을 그렸다’ ‘더 밝은 미래의 비전을 들려주었 다’ 등의 찬사와 함께 쇼스타코비치를 복권시켜 주었다. 하지만 나중에 쇼스타코비치는 '앞부분의 암울한 부분이 바로 스탈린주의 치하에 짓눌린 민중을 상징'한다고 이야기한다. 아슬아슬한 곡예를 부리며 스탈린주의를 비꼰 것이다.
이 곡은 초연 당시 1시간이 넘도록 박수를 받았다. 연주 시간 45분보다 더긴 시간이었다.
테마가 카논품으로 나타낸다. 뒤이어 바이올린의 독특한 제1테마와 제
2테마가 나타나 발전되다가 코다로 끝난다
있으며 애수에 찬 번뇌의 분위기도 자아낸다
풍으로 장쾌하게 전진한다. 4악장 피날레 부분에 종소리가 있는 것이 이
연주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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